Psalm 50:8 Not for your sacrifices do I rebuke you, your whole- offerings always before me;(REB,ISBN 0-19-529001-1)

종교적 피난처로서의 미국

흔하게 퍼져 있는 하나의 생각은 현대 미국이 종교의 자유를 위한 피난처로서 세워졌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차원에서는 이것을 부인할 수 없다. 1620년에 시작하여 이후 1630년대에 더 많은 약 2만 명의 청교도가 미국으로 이주 했는데 대개는 영국의 찰스왕과 윌리엄 로드 대주교의 가혹한 박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사실, 많은 유럽 이주민들은 종교적 동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 때문에 미국에 이끌렸다. 더욱이 실제로 미국에서는 예배의 자유가 제한되었다. 식민지들은 종교적 관용이 상당히 부족했고 어떤 이견도 심각하게 처벌을 받았다. 또한 청교도들은 사회가 신정일치체제-사람들을 신의 지배에 따라 다스리는 체제-라고 생각하였다. 행동과 사회적 삶은 엄격하게 강제되고, 교회에 참석하지 않는 것과 같은 “죄”는 당국에 의해 처벌되었다. 그 결과 청교도 정착촌들은 어떤 관례적인 의미에서도 거의 “안식처” 또는 “피난처”라고는 할 수 없었다.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될 비극적인 양상, 즉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의 대규모 살상과 노예선으로 수많은 아프리카인을 강제로 이동시킨 양상도 있다. 미국이 종교적 피난처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사람들의 역사적 현실에는 엄청난 모욕이다….

 

종교부흥으로서의 미국

1730년대에서 시작하여 국가를 놀라게 한 이상한 현상이 시작되었다. 종교부흥의 물결이 열세 개 식민지를 휩쓸었다. 그것은 매사추세츠의 노샘프턴에서 시작되었으나 미국의 거의 모든 집안으로까지 재빨리 확산되었다. 수십만의 사람이 그 운동에 대해 듣거나 직접 영향을 받았다…

역설적으로 대각성은 성격상 종교적이기는 했으나 교리상의 통일을 이루어 내지는 않았다…

 

 

<인용: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원 <미국의 사회와 문화;워크북: 제 5장 Early Religion in America中, 저자:신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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