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사님께서 음악회에 가 계신가보다. 말씀을 나누고 결정한다.

내 여동생이 학원강사였다. 호주에서 유학을 했는데 그 이후에는 한국에 들어와서 어머님과 아버지를 돌보았다. 많은 영어강사들이 그렇듯이 상사와 갈등이 있으면 성질을 죽이고 참아야 하는데 여러군데를 바꿨다. 요지는 현재 내가 돈을 보내지 않으면 아버지와 여동생이 좀 힘들지 모른다는 것이다. 현 고시원은 교회옆에 있는 요충지인데 집겸 사무실에 있을때와 혼자 있을때 글의 깊이(?)가 달라진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가 된 코모두스에게 원로원 한명이 ‘흑사병 환자를 앉아 보신적이 있으십니까?’라고 시저(로마 황제)에게 질문을 한다. 고시원에서 방을 빼고 그대신 아버지에게 보내는 것이 상식일지 몰라도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위하것이라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보다 아비나 어미를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라고 성경에 써있다. 기도해서 될 일이 아니라 내가 대학교를 다닐때 배운 ‘영성’의 문제인데 그레이스는 성남이 견딜수 있다고 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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