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영어예배를 드린다. 중국놈들 웃긴다…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The Crucified God)의 내용중에 ‘십자가가 모든 것을 시험한다’라는 명제가 있다. 나는 고등학교때 역사책을 읽으면서 <길거메시 서사시> 또는 <함무라비 법전>에 대하여 읽으면서 혹시 성경이 이것을 카피한게 아닐까하고 회의를 한적이 있었다. 그 근본적 판단은 십자가에서만 답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신학(神學)을 한다면서 한국방송통신대학을 왜 다닐까 의문을 가지신 분이 있는 분들이 있으신가 본데 내가 이전에 성(聖) 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자역학’에 대한 글을 올렸다가 사랑의교회 지적수준을 뼈저리게 느낀적이 있었다. 방송통신대학의 교육과학 문화교양학과교수로서 이준석이라는 분이 계시다. 이분은 내가 느끼기에는 기독교인인데 우리가 소위 ‘세속적 학문’이라고 말하는 철학을 기도교적으로 재해석 하시는 분이다. 그렇게 해야만 세상사람들과 학문적 접촉점을 찾을 수 있는데 임마누엘 칸트나 칼 야스퍼스, 니체, 플라톤…등등 철학을 궤뚫고 계신다. 그리고 그 철학자들의 한계와 복음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더라도 ‘철학자들이 절대진리는 아니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나는 교회갈때 제일 싫은게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에서 헛소리 할때이다. 서점을 가만히 둘러볼때가 있는데 프랑스의 수학자이고 나중에 기독교인이 된 프랑스의 수학자 파스칼의 <팡세(생각한다는 뜻이다)>가 없다. 나는 오정현 담임목사가 뭘 생각하는지 몰라도 자꾸 NASB를 언급하는데 미 연방법원에서 중요한 재판을 할때는 어떤 단어의 정의(definition)를 결정할때는 Oxford사전을 참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오바마 대통령에게 ‘you negro’하면 명예회손으로 걸린다. 왜냐하면 옥스포드에서 ‘negro’를 욕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나는 목회자로서 두가지 갈래길이 있는데 사랑의교회에서 사역하는것 하고 신박사님의 ‘북한의료선교회’로 가는 방법이 있다. 박사님과는 30년 이상을 사귀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아신다. 그것은 옥한흠 목사님도 마찬가지였던것 같다. 나보고 산상기도회에 오라는데 공부해야지 거기갈 시간이 어디있냐? 여기에 처세술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날 당일에 폭우가 쏟아진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 될 수도 있겠다. 하나 主의 뜻으로 분명한 것은 130학점을 얻어서 한국방송통신대학의 학사모를 쓰라는 것이다. 그때가서 박사님의 직권으로 ‘북한의료선교회(가칭)’총무가 되든지 아니면 총신대 신대원에 옥한흠 목사님 추천서를 내미는 것이다. 나는 지금 컴퓨터 비지니스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 다져놓은 영어실력에 의존하고 있다. 철학과목이 교양과목이기는 해도 ‘꿍자락따 삐약삐약’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