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터넷으로 1부 예배를 드렸는데 당회장 메시지 중에서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한다는 말씀이 나왔다. 사람들은 내가 신학을 한다고하면 웃긴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머리가 돌대가리라서 그렇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 복음을 전한다. 한자가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유혹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즉 세상에서 도망해서 산으로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묻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내가 성결할 수 있는 이유이다. 내 나이가 50이니까 90까지는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일 신박사님을 만난다. 백발이 깃드는데 30년동안 하나님이 자기를 경외하는자에게 어떠한 은혜를 베푸시는지 똑바로 보았다. 수학에 공리(公理)라는 것이 있다. 예를들어 기하학에서 점이라는 것은 개념상 부피와 길이가 없다. 그런데 이것을 인정할 수 없으면 수학을 할 수가 없다. 언제나 의문이 생기면 답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나는 유대인 600만(이것은 미국의 추산치이다)명을 죽인 아돌프 히틀러에게도 복음을 전할 것이다.(나보고 연옥을 인정하냐고 묻지마라. 모르겠다. 다만 사도신경 초창기에는 ‘음부강하’가 있는것을 알고있다)’하나님 저 거지 같은 인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여기서 공리가 나오는 것이고 북한사랑선교부의 어떤 교역자가 ‘나부터 살고 봐야지’하다가 하나님한테 짤렸는데 나도 나부터 천국에 들어가고 봐야겠다. 아주 고소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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